평소 차분하고 꾀 많은 사람이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회의석상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공격을 하고 흥분하면 이는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양보를 더 얻어내기 위한 연극이다. 아마 그는 진지하게 화내는 연극을 하면서 이 연극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연극 수위를 조절하거나 어떻게 여운을 남길 것인지를 고려할 것이다.
최선의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손자병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중도를 획득하는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견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방법, 살림살이 걱정이 많은 꼼꼼한 사람이 주로 들고나오는 현실 제약론이나 상대방 의견을 충분히 인정하되 그 의견에서 고려되지 못한 작은 일을 부풀려서 거론하여 결국 상대방 의견이 별게 아니라는 김빼기 작전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진행하자는 입장은 항상 사람들한테 환영 받는데, 이는 어찌 보면 중도의 극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런 일들을 조직에서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렇게 중도적인 입장이 항상 결론으로 도출되는 이유는 서로 조금씩만 손해를 보겠다는 의미이다. 서로 손해를 보았으니 공평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자주 내리는 의사결정은 올바름에 대해서가 아니라 공평함에 대해서이다.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자기의견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자기의견이 자신소유이며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자신의 분신이자 소유물인 의견에 상처가 나는 것을 사람들은 참지 못하며, 그것은 손해이거나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의견은 자신에게 소속된 소유물도 아니며 정체성도 아니다.
우리는 신문이나 책,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더 깊숙하게는 관찰을 통해서 이미 존재하는 의견을 선택할 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로 선택과 발견의 문제이며, 그 아이디어가 누구에게 귀속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의견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자기 소유라고 느끼는 것은 보편인식이라 할 수 없으며 산업사회가 낳은 특수한 인식형태이다. 유클리드 공간개념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은 3차원 좌표에서 자기를 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차원 좌표에서 현대인은 부, 권력, 소속, 수준, 성향과 같은 좌표축으로 자신을 표시하고 자기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높이는 생존게임을 벌여야만 한다. 분업과 전문화가 극대화된 사회구조에서는 개별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기식별 좌표가 자기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어떤 식별자로 인식되도록 하는 유클리드식 인식, 즉 선형인식은 이제 하나의 덫이 되고 있다. 이런 인식에 갇혀있는 한 우리는 우리 본래 모습인 창조자로 다가갈 수 없으며, 발생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아무런 근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게 된다.
선의 어떤 위치에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선형인식은 차이에 따라서 선형대립을 만들고 이 대립이라는 모순은 손해가 공평한 중간지점에서 해결되는데 이는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연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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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아이디어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면, 테일러식 조직이 과연 오늘날 적합한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물론 대부분 조직들은 우리는 창의와 능력을 존중하고, 그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테일러식 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의수업에 토론수업을 조금 끼워 넣었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 말하는 자기주도학습이 아닌 것처럼 팀원과 팀장 역할을 좀 더 강화시켜주고 심지어 출근시간을 자유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테일러식 조직에서 벗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속한 조직은 과거처럼 혹은 전쟁이나 축구경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표정처럼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여전히 이렇게 경직된 조직에서 왜 우리는 일하는 것일까? 일이 내 이상을 실현해주는 것도 아니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거의 비슷한 일을 심지어 상사가 주는 모멸감을 참으면서 우리는 왜 일하는 것일까? 봄이나 겨울을 느낄 사이도 없이 우리는 만원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면서 헐레벌떡 사무실에 도착했다 퇴근했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형태의 노동은 상당히 끔찍한 면이 있다.
친구나 가족, 자연 혹은 마땅히 누려야 할 예술과 등지고 우리는 인간이 가진 존엄과 명예와 상관없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등가죽에 채찍을 맞아가면서 일하는 노예와 같은 처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는 두려움, 모멸감, 위협, 지루함이 늘 함께 하고 있다.
나는 대학시절 중국이 세계공장으로 등극하기 전에 성남에 있는 작은 액자공장에서 액자포장을 해 본 적이 있다. 포장부는 젊은 반장이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아줌마,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도금과 광택작업이 끝난 액자들이 쉴새 없이 앞라인에 쌓이면 우리는 그것들을 개별포장하고 다시 박스포장을
해야 했다. 젊은 반장은 이 일을 아주 재미있어 했는데, 그는 일하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빨리 포장작업을 처리하는지 우리한테 시범이라도 보이는 것 처럼 정말 잽싸게 손을 놀려 포장작업을 했고, 나나 아줌마들에게 이런 저런 작업지시를 내렸다. 젊은 반장 자신은 박스포장을 주로 담당했는데 일이 더딘 아줌마 옆에 가서 그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앞라인에 포장할 물건들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으면 앞라인 담당자와 작업속도를 조율하기도 하고 박스포장 된 물건들이 빨리 배송되도록 트럭기사들을 재촉하기도 했다. 아무런 다른 소리 없이 물건들이 포장되는 사각사각하는 소리만이 정적 속에 흐를 때 포장부 직원들 호흡은 최고조에 달해 마치 여섯명이 한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협동수준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내 숨이 가빠오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지만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쾌락이 존재한다. 찌뿌둥한 몸를 이끌고 지저분한 공장거리를 지나 공장에 들어설 때는 절로 한숨이 나오고 미래에 대해 아무런 즐거운 생각도 못하고, 내 생명과 호흡은 단지 포장지들과 컨벤어 벨트와 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절망과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그 고통은 일이 주는 쾌락으로 반복해서 치유되곤 했던 것이다.
우리가 어쩜 비참할 정도로 경직된 조직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부자가 된다거나, 소속을 가지거나, 명예나 권력을 획득하는 것, 사회를 이롭게 할 목적도 있고, 정말 자신이 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재된 조건에 불과하다.
어느날 말쑥하게 차려 입은 어떤 신사가 우리를 찾아와서 하루에 8시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황량한 들판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을 하면 평생 동안 지금 하는 일보다 2배로 많은 돈을 준다고 제안했다고 하자. 돌을 던지는 연못 앞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게으름을 피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하루, 이틀, 한달, 두 달이 지나면 우리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게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어 아마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를 것이다. 아무리 배고픔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이 일을 일년 동안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일하게 만드는 것은 내재된 조건 뿐만 아니라 일 자체가 주는 쾌락 때문이다. 일에 빠져있는 있는 사람은 일이 주는 쾌락에 깊이 탐닉해있는 사람이다. 유흥이 주는 쾌락은 시간이 지나면 싫증나지만 일이 주는 쾌락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그칠 줄 모르는데 그것은 일이란 것이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기대와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바램이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보내는 기대와 요구를 들어주고 감사를 받는 과정이다.
테일러 방식이 실제로 현장에 도입되자 마자 미국을 넘어서 전세계로 급속도로 전파된 것은 목표설정이란 방식을 통해서 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테일러 이전까지 일이란 시간흐름에 따른 노동에 지나지 않았지만 테일러 이후 일은 마치 전쟁이나 사냥처럼 변해버렸다. 목표가 사람들 기대를 집중시키고 증폭시킨 만큼
일은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쾌락을 준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속한 조직이 이토록 경직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목표지향성을 가지기 때문이고 일에서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위대한 비전은 분명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 비전이 우리가 일하도록 하는 직접동기는 아니다. 두려움과 쾌락이 우리가 일하는 동기이다. 자신이 이루어놓은 지위와 부를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과 일 자체가 주는 매력이 우리를 일하게 하는 동기이다. 김연아도 올림픽 우승 후에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서 너무 기쁘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때때로 자기능력보다 훨씬 큰 일들을 해낸다. 조안 롤링이 해리포트라는 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아기 분유값을 벌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벌이라는 명작은 그가 빚이 없는 평범한 부호였다면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만들어가는 소설가는 아름답게 지어진 그 문장 하나하나에 희열감을 느낀다. 그것은 쾌락이다. 출판사에서 원하는 시간과 수준이 정해지면 소설가에게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은 고통과 두려움이지만 또한 쾌락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두려움과 쾌락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그 일에 얼마만한 기대가 집중되는가에 달려있다. 이 기대를 집중시켜내는 것에 바로 테일러 방식의 절묘함이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방안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고 아이디어 실행을 방해하는 첫 번째 힘이 테일러리즘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 매커니즘을 살펴보니 우리가 부정해야 할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테일러 방식은 더 발전시켜야 하는 방식이란 걸 알았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든 일을 전쟁이나 사냥처럼 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과는 분명 경쟁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테일러 방식 바깥에서가 아니라 그 기반 위에서 찾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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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리즘이 목표와 보상, 관리라는 수단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밀어 올리는 마법깃발이라면 비용이라는 힘은 마치 중력과도 같은 힘이다. 중력은 날아가는 새가 날개짓이 끝나는 순간 땅으로 추락하게 만드는 힘이고, 기둥 약한 건물을 마침내 무너뜨리는 힘이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새는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거려야 하고, 백조는 물에 떠 있기 위해서 쉼 없이 물갈퀴로 물살을 헤쳐야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영양을 보고 달려드는 사자가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총력질주를 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다.사자는 고작 1분이나 2분을 총력질주 할 수 있으며 그 시간에 영양을 잡지 못하면, 그 다음 사냥은 더 힘들어질 것이며, 나중에는 결국 달릴 힘이 없어 초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새들은 가장 오랜 시간을 하늘에 떠 있기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날개짓을 하고, 백조의 물갈퀴나 영양에게 달려드는 노련한 사자의 사냥기술도 가장 최적화되어 있을 것이다. 비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훈련을 통해 비용은 최적화된 상태에 수렴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추락이거나, 죽음이기 때문에 비용이란 힘은 제약조건을 만들어내고 이 조건에서 목표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등 모든 움직이는 이동수단들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선형 디자인을 채택하고,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 계산대는 들어오는 사람을 빨리 안내하고 계산 뒤에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출입문 근처에 만들어진다.
강의수업이 일반화된 것은 토론수업보다 훨씬 진도관리와 지식전달에 용이한 수단이기 때문이다.왜 모든 빌딩들은 네모 반듯하게 지어질까? 효율성이 본질이 아니라 바로 비용이 본질인 것이며, 우리는 비용이란 힘을 무시하는 순간 통제불능, 무기력,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조직을 움직이는 두 번째 힘은 비용이며, 비용법칙은 조직이 생산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최적화되도록 강제한다. 아이디어가 최적화에 도움이 된다면 그 아이디어는 비용법칙에 의해 당연히 채택되지만 최적화와 상관없다면 그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결핍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추구하는 목표나 추구하는 방식도 기존 목표의 최적화 과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목표와 목표달성을 위한 최적화 프로세스라는 힘 법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어디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사업모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기존에 나와있는 서비스와 상품이 사람들이 겪는 결핍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사회가 끝난 지 몇 십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디어들은 계몽주의 사회에서나 필요한 컨텐츠를 쏟아낸다.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뭔가를 창조할 사람이 필요한데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지식전달 교육에만 매달리고, 물건들 홍수 속에 살지만 여전히 개성 없는 물건들은 대량생산체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는 자꾸 진보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출구 없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으며 극도록 궁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듯이 사물은 궁해지면 변화를 도모하게 되고 우리사회는 이런 급격한 변화라는 태풍 속에 놓여있다.
이 변화에 대한 물꼬가 쉽게 트이지 않는 것은 기존 힘이 강대하기 때문이고 거기에 비례해서 우리가 가진 생각은 너무 모지라거나 넘쳐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근본 힘과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힘을 고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테일러리즘과 비용이라는 힘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거대한 힘이다.이 두 가지 힘만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실현되기 어려운데, 한가지 힘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 낼 변화에 대해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다. 가능성 없는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조소를 보내면 그만이지만 어떤 생각이 기존 질서를 교란시켜서 결국 자신위치를 초라하게 만들거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힘을 만들어내고 자기지위를 제대로 지켜내기 위해 아이디어에 대해 온갖 형태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성공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격하는 사람은 자기이해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만 명분을 갖추기 위해 온갖 논리와 현실문제를 거론한다.
한발 떨어진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왜 그리 집착하냐고 묻지만 사람들이 자기이해를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이다. 정말 지혜있는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자기이해는 그 사람이 행동하고 말하는 기준이 된다. 크게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는 것이 조직에 큰 이로움을 주지만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서 자기지위를 가지고 있고 기존 질서에 따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대 보물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를 그리는 영화는 일반적으로 보물이 숨겨진 동굴 근처에서 원주민들의 공격을 먼저 받고, 동굴에 들어서서는 굴러오는 돌이나 화살공격을 받기도 하고, 바로 보물 턱밑에 이르렀을 때는 가장 강력한 전사의 공격을 받는다.
영화가 실제가 된다면 누가 이 촘촘한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조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열어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테일러리즘, 비용법칙, 새로움에 반대하는 사람 - 3종 장애물 경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승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아이디어 혹은 컨셉이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 방법은 없었다면 우리가 위대한 혁신이라고 칭송하는 것들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 방법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거나, 아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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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음주의 생각
2010/03/11 10:07
아이디어를 실행시키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http://bit.ly/cy01Vg [drunken_j의 Feedly에서 전송]
무엇이 근본가치를 만드는가 생각해보자. 사막을 헤메다가 지치고 목말라서 쓰러질 것 같은 사람에게 한 컵의 물과 빵 한 조각을 내어 놓고 그 옆에는 100만원 짜리 지폐다발을 놓아놓고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
당연히 한 컵의 물과 빵을 선택할 것이다. 100만원 짜리 지폐다발로 음식과 물을 살 수 있는 가게가 그 사막에 없다면 말이다. 이때 빵과 물의 상대가치는 몇 천만원, 몇 억원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하는 일과 그 결과로 나온 어떤 상품은 절대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조건에서 가격이 정해진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은 결핍조건을 잘 발견해내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어떤 결핍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결핍은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하며 그 해결책을 아이디어로 내놓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해결책으로 나온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실행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말이다. 결핍 현상에 대해 정확히 솔루션을 제시하는 위대한 아이디어일수록 실행확률이 더 낮아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위대한 아이디어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에 대해 상상할 수도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도 있지만 불확실이라는 넓고 깊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 불확실이라는 바다에 어떤 괴물이 어떤 힘으로 그 아이디어를 박살내 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불확실을 두려워하고 그 바다를 건너기를 주저한다. 사실 불확실이라는 바다에는 아이디어라는 배를 난파시킬 충분히 크고 무서운 힘들이 존재한다.
우선 모든 힘들의 원천이 되는 테일러리즘이라는 힘이 존재한다. 테일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목표, 보상, 관리라는 체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 체계는 우리가 소속된 조직을 움직이는 근본 운영체계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체계는 또한 목표량, 목표시간, 매출액, 비용, 이익, 보상이라는 숫자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운영체계가 강력한 힘이라는 것은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여러 개인들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낸다는 것이다. 명확하게 승부가 갈리는 전쟁이나 스포츠처럼 테일러 방식은 사람들을 일에 열중하게 하고 중독시키는 마법이 있다. 이 위대한 마법의 비밀은 기대(Expectation)를 모으는 것에 있다. 목표와 승리는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승리에 대한 기대를 모아낸다. 여러 사람들의 합치된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가치로운 일인가?
조직이 있고 테일러리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은 테일러리즘과 같이 만들어졌다. 테일러리즘 이전에는 군대, 공장, 사무소가 있었던 것이지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테일러리즘은 조직이 갖는 본질인 것이다.
문제는 테일러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는 대상은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 숫자로 계량화할 수 있는 것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겪고 있는 결핍이 예술에 관한 것이라면, 따뜻한 사랑, 소속, 참여, 자기주도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이디어는 이것들과 관련해서 생산될 것인데 이런 것들을 숫자로 계량화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눈에 보이게 설명해서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낼 수 있을까?
만약 어떤 공원을 디자인하는 기획자가 그 공원에 스토리를 불어넣고자 그 공원에 있는 호수에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자고 제안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아마 어떻게 공원에 있지도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붙이자는 것인지 분명히 시비를 할 것이며, 그런 노력에 비용을 들이느니 차라리 아기자기한 다리 하나를 더 놓는 게 낮다고 생각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없다. 테일러리즘이 힘을 발휘하는 조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죄악과도 같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위해 확실성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눈에 더 잘 보이도록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과제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결핍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무형적인 것들이다. 편리함은 항상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지만 이제 가치가 발생하는 곳은 주로 감각, 관계와 소통, 자기확장과 관련된 것들이라 그런 아이디어를 언어와 숫자로 표현하는 것에는 일정한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아이디어가 충분히 가시성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는지 알 수 없다. 디자인도 무형요소이지만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펜과 스케치북과 디자인 프로그램과 디자이너가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원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면 이런 작업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른다. 컨셉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에 기대를 모아내고 사람들을 스포츠나 전쟁처럼 집중시켜 낼 수 있는가?
테일러리즘은 목표에 대한 중독을 만들어내며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를 깨뜨리는 첫번째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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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중에 한번씩 스타벅스에 가서 멍 때리면서 문제에 대해서 몰입을 할 때가 있었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식을 때까지 손도 대지 않으면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몸이 막 아파온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소음이나 낮게 깔리는 음악소리도 몰입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그냥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는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사무실로 가곤 했다. 모든 체인점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스타벅스는 몰입하기에 좋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생각에 몰입한다는 것은 머리 속에서 논리를 작동시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논리와 말들을 머리 속에서 지우는 과정이다. 말들과 논리와 여러 가지 잡다한 분석들을 머리에서 지우고 나면 어떤 느낌들이 가슴속에 막 파고 들어온다. 사람들 얼굴, 어떤 감정들이 가슴을 채우고 은하수와 같은 흐름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일 듯이 느껴진다. 어떤 의사결정을 염두에 두고 그런 몰입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떤 가정은 앞뒤가 막힌 것 처럼 답답하고, 또 어떤 가정은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올바름은 정해져 있지 않고 해결책이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항상 말과 논리를 잊고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것에 의거하여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인정을 해주었다. 어떤 때는 열광적으로 인정을 해주었고, 어떤 때는 존경으로 어떤 때는 간단한 인정으로 말이다.
회의석상에 빙 둘러앉는 사람들을 보면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내면에 굉장한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힘에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고, 굉장히 순순한 영혼을 갖고 있지만 흐르지 않고 멈춰있어서 고집스런 사람도 있다. 온유하고 따뜻하고 추진력이 있지만 작은 일에 집착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흐름도 있고 올바름도 있지만 너무 그릇이 작아 큰일을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앉아있다.
일이란 그 때에 맞는 올바름이 있다. 사람들은 그 올바름을 잘 알지 못한다. 신문기사, 수치,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 비효율성, 불안감등 다양한 형상으로 문제는 우리에게 지금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이 개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냥 치부해버린다. 그러면서 불안감에는 휩싸여 있으면서 앞으로 우리는 잘되지 못할 거라는 말만 되뇌고 있다.
올바름을 알지 못하면 집중할 수 없고 결국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 문제들에서 올바름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배운 것은 거저 효율성과 품질 또는 별로 쓸모 없는 전략뿐이다.
현대라는 시대와 문화, 현대가 이루어놓은 문명들, 현대를 만들어낸 위대한 생각들, 규칙, 기술들과 미래가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고 대부분 문제는 여기서 파생된다. 사람에 대한 관점이 서로 전쟁하고 있고, 가치로운 것에 대한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중세 세계관과 근대 르네상스 시기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 중심에 놓여있고 변화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대부분 문제들은 여기서 파생된다.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그 세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어떤 범위로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한다.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는 그 모습일 뿐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뿌리에는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결국 올바름을 세울 수 없으며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얻지 못한다.
물론 반복되는 실패의 힘은 위대하다. 반복해서 실패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올바름에 이를 수 밖에 없다. 단
그때까지 치루어야 하는 수많은 댓가를 감수하기만 하면 된다. 개인이 가진 기회, 시간,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올바름은 변화를 아는 힘에서 나온다. 변화를 아는 것은 거대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때까지 우리가 쌓아놓은 지식은 개념과 원리, 기술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지식들이 필요하지만 오늘날 올바름을 세우기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변화를 아는 힘이다.
몰입하고 상상하고 깊이 관찰하고, 자신에 맞게 공부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으로 그런 힘을 길러야 한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힘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능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를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변화를 좀 더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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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 2010/03/11 00:23
아...저는 생각이 몸을 따라가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는데..ㅋㅋ 암튼 감사드립니다. 하나가 앞서면 조만간 서로 만나겠죠. 답글에 대한 답글이 한참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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